듀스 故김성재 사망 살인사건정리
가수 김성재는 1972년,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가수 김성욱이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일본 지사로 발령되면서 가족과 함게 일본으로 건너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고 귀국 후 상문고에 진학했다. 치아가 좋지 않던 아버지를 위해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아버지가 이혼 후 분가하자 꿈을 접고 남편같은 아들, 아버지같은 형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친구 이현도를 따라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춤에 눈을 뜨게 됐고,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이현도와 함께 가수 현진영의 백댄서 팀인 ‘현진영과 와와’로 활동했다.
하지만 1991년 현진영이 대마초 흡연 협의로 구속되면서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현진영의 소속사 대표인 이수만 현 SM엔터테인먼트 대표 등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러브콜을 보냈으나 김성재는 이를 마다하고 3개월간 벼락치기 공부로 한양대 관광학과에 합격한다.
김성재는 고려대 법대 출신인 아버지, 이화여대 교육학과 출신인 어머니 육영애 씨를 닮아 머리가 좋았다고 한다. 대학 진학 수 김성재는 이현도와 힙합 댄스 그룹을 결성해 1993년 5월 <나를 돌아봐>로 데뷔했다. 시대를 앞서간 이현도의 음악과 180cm의 키에 세련된 스타일의 김성재에 가요계는 주목했다.
김성재는 데뷔 후에도 클럽에서 춤을 추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다.
1993년 9월, 강남 J나이트클럽에서 2살 연상의 김유선을 알게된다. 작은 키에 통통한 체형, 파마한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당시 단국대 천안캠퍼스 치대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고등학교 성적은 하위권이었다고 한다.
군산 재력가 집안의 딸로, 가사도우미가 딸린 50평대 여의도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뉴그랜저(지금의 제네시스 G90에 해당)를 모는 등 호화생활을 했다.
어머니 고기점은 군산의 지역 유지로 성균관대 약학과를 졸업했고 대형 약국인 <형제약국>을 운영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제주도 전 남편 살해사건의 범인 고유정과 같은 제주 고씨다.
고기점은 신한국당(현 자유학국당)국회의원 후보로 출마를 준비 중이었다. 집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와 찍은 사진을 걸어뒀다고 한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김유선의 외가 친적아저씨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군산에서 민주정의당(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노태우 정부 때에도 임명직 서울시장을 지낸 바 있다.
1994년 1월, 김성재는 김유선과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김성재는 단순히 여자친구로 생각했으나 김유선은 결혼까지 원했다. 김유선은 김성재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으로 연애 활동은 물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싫어해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어디서 뭘 했는지, 누굴 만났는지 캐묻는 건 예사였고, 스케줄을 일일이 확인해 연락이 되지 않으면 서울 시내 클럽들을 뒤져 난리를 피우는 등 스토커 행각까지 벌였다.
매니저가 김성재의 삐삐 음성사서함에 ‘식당으로 나오라’란 메세지를 남겼더니 김유선이 메시지를 훔쳐 듣고 식당에 나타나기도 했다.
콘서트 현장에 난입해 ‘성재는 내 친구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여성 팬들에게 소리친 일화는 유명하다. 김성재 팬들에게 그녀는 두려운 존재였다.
김성재는 김유선을 피하기 시작했고 매니저에게도 김유선의 전화는 연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1995년, 김유선은 대학을 졸업했으나 합격률 100%에 이르는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낙방했다.
그해 5월, 김성재는 결별을 통보했지만 김유선이 ‘누나, 동생으로 남자’고 매달려 연락은 유지했다.
6월,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김성재와 이현도는 데뷔 2년만에 팀 해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나기로 한다. 표면적으로 소속사와 갈등이었으나 둘다 아르헨티나 국적이라 한국에서 1년 이상 활동하면 입영대상이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7월경, 김유선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김성재와 말다툼 끝에 티셔츠를 찢고 ‘너는 죽어야 돼’라며 가스총을 발사했다. 김성재가 눈물, 콧물 범벅이 돼 욕설을 내뱉으로 아파트를 나오자 김유선은 뒤따라 나오며 ‘다시는 전화하지 마라’고 소리쳤다.
김성재는 7월 20일 앨범을 계약한 후 다음알 미국 LA로 출국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자 김유선은 출국 전날, 김성재를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 자고 있는 틈을 타 손발을 끈으로 묶고 입에 테이프를 붙였다. 김성재는 ‘꼭 돌아오겠다’고 사정해 겨우 빠져나왔으나 약속시간에 늦어 계약서에 서명하지 못 했다.
다음날, 그는 미국 LA로 출국해 백댄서 류 모씨와 지내며 솔로 데뷔를 준비했다. 새 여자친구도 생겼다. 하지만 김유선의 스토킹은 계속됐다. 김성재가 출국 전 빌린 돈을 갚았는데, 김성재의 어머니 육영애 씨에게는 ‘성재가 휴대폰 사라고 돈을 줬다’고 거짓말을 했다.
김성재가 출국한 다음날, 김유선은 소속사 직원으로부터 미국 전화번호를 알아내 연락했다.
김성재는 처음 몇 번은 통화했으나 이후 전화를 피했고 류씨에게도 전화를 바꿔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김유선은 밤낮없이 매일 한두차례 전화해 류씨에게 ‘성재 여자친구 있느냐’,’언제 귀국하냐’라고 물었고 ‘내가 엘에이에 갈 수 있게 김성재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간혹 김성재와 연락이 닿으면 길게 통화했고 김성재가 울면서 ‘너와 끝났으니 날 잊으라’고 애원한 적도 여러번이다.
11월 초, 김유선은 평소 자주 이용하던 반포종합동물병원을 찾아 ‘반려견이 치매에 걸려 안락사시키려 한다’며 방법을 물었고, 원장은 동물마취제인 졸레틸, 동물 안락사용 황산마그네슘 주사기 2개를 사용법과 함께 건냈다.
며칠 후, 김유선이 키우던 말티즈 강아지가 죽었고, 직후 새로 구입한 말티즈도 갑자기 죽었다.
11월 10일, 김유선은 류 씨에게 전화해 ‘성재가 귀국하고 일주일 후 내가 일본으로 유학간다’고 거짓말을 하며 ‘그 때까지만 절해주면 헤어지겠다’고 약속했다.
김성재는 김유선과 통화 후, 류씨에게 ‘유학가기 전까지만 만나야겠다. 일주일만 지나면 난 자유다’라고 기뻐했다. 김유선은 김성재에게 ‘돈을 줄테니 부츠를 사 달라’고 부탁했고, 김성재는 750달러 상당의 검정색 부츠를 구입해 영수증을 챙겼다. 이 때문에 김성재는 생활비가 부족해 이현도로부터 돈을 빌렸는데 김유선에게 울면서 해당 사실을 호소하기도 했다.
11월 15일, 김성재가 귀국해 김유선에게 부츠를 전달했고 이후 김유선은 매일 새벽까지 붙어다녔다.
11월 19일, 김성재는 <SBS TV가요20(현 SBS 인기가요)>에 타이틀곡 <말하자면>으로 성곡적인 솔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 당시 대기실에 있던 김유선이 방송에 포착되기도 했다.
그날 밤, 김성재는 <스위스 그랜드 호텔(현 그랜드 힐튼 호텔)> 숙소에서 일행과 함께 술을 마셨다.
새벽 1시, 일행이 모두 자러가면서 김성재는 김유선과 단둘이 남았다. 김성재 매니저는 최대 135분짜리 타이머를 세팅해 건조기를 작동시킨 후 잠이 들었다.
김성재는 김유선이 건낸 맥주를 반 병 마셨고, 김유선은 새벽 3시 45분 호텔을 나섰다.
다음 날 아침 7시, 김성재가 소파 위에 누워 숨진 채 발견됐다. 방년 23세, 김유선이 유학을 떠난다던 날이다. 분장을 지우지 않고 콘텍트렌즈도 빼지 않은 상태였다. 밤새 웃통을 벗고 있었으나 사망 당시에는 긴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경찰은 자살로 잠정 결론내고 호텔 CCTV와 김성재가 마신 맥주를 확보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성재의 오른팔에 전날 없었던 28개의 주사 자국이 발견됐다. 김성재는 주사를 매우 싫어했다.
오른손잡이인 김성재가 직접 주사하는건 불가능하므로 타살이 의심되는 정황이었다. 그러나 김유선은 육영애씨에게 ‘성재는 왼손잡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게다가 새벽 4시에 멈췄어야 할 건조기가 7시가 되도록 작동 중이었다. 누군가 소음을 감추기 위해 건조기를 다시 돌린 것이었다.
일주일 후, 담당 검사가 부검을 명령하면서 병원 구급차가 영안실을 찾아와 김성재의 시신을 싣고 육영애 씨와 남자 지인을 동행시켰다. 그때, 김유선이 쫒차와 태워줄 것을 요구했고 병원 측은 ‘유족이 아니고 자리도 없다’며 거절했으나 김유선이 울면서 차를 막길래 어쩔 수 없이 육영애 씨 남자 지인의 무르팍에 태웠다.
부검 장소에서 김유선은 안절부절하더니 육영애 씨에게 ‘검사에게 돈을 줘 부검을 막아야 한다. 검사관에게 돈을 줘 사인을 심장마비로 쳐리하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어디있냐’고 요구했다.
육영애 씨가 거절하자 김유선은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로 ‘부건을 한다’고 호고했고 육영애씨에게는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김유선의 부모는 해당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김유선은 반포종합동물병원 원장에게도 졸레틸 구입 사실을 말하지 말 것을 부탁했으나, 부검 결과 김성재의 몸에서 졸레틸과 높은 수치의 황산마그네슘이 발견되자 원장의 신고로 체포됐다.
경찰조사에서 김유선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성재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헤어지자고 한 적 없다’면서 김성재가 사준 부츠를 증거로 제시하며 ‘가스총을 쏜 사실이 없다’고 거짓 진술했다. 김유선은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더니 결국 1996년 6월 1심에서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김유선 부모는 서정우 변호사를 선임했다. 서정우 변호사는 1993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퇴임한 이른바 전관변호사였다. 전관변호사란 검사, 판사 출신 변호사로 퇴임 후 몇년간은 ‘전관예우’를 받아 승률이 매우 높고, 그만큼 수임료도 비싸다. 실제로 서정우 변호사는 개업 이등해인 1994년, 전체 변호사 소득 랭킹 3위, 개인 변호사 중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그러자 담당 검사가 2심을 앞두고 전격 교체됐고, 김성재 유족은 2심 일정에 대해 어떤 통보도 받지 못 했다.
5개월 뒤 열린 2심에서 서울고법 안성회 판사는 ‘법의학자들이 추정한 사망 시각을 믿기 어렵다’,’김유선이 구입한 졸레틸은 치사량 이하다’,’마그네슘 수치는 정상이다’,’치대 졸업생이 졸레틸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을 리 없다’,’살해 동기가 불명확하다’며 안성회 판사는 김유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1998년 2월, 김유선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당시 외가 친척아저씨인 고건 씨가 국무총리로 재직 중이었다. 김유선은 무죄 판결 후 치과의사 국시에 합격해 치과의사가 됐고, 김예원으로 개명한 후 성형수술을 받아 과거를 세탁했다.
이대목동병원 구강악안면외과에서 레지던트를 수련한 뒤, 마포구 신촌 이대역 부근에 <미앤화이트 치과>를 개원하고 병원 홈페이지에는 ‘김예원’이란 이름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김성재 팬들에게 신상이 털리자 폐업하고 강남 논현동에 <사과나무치과>를 개원했다. 이를 계기로 현재까지 병원 홈페이지에 본인의 사진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후 유명 성형외과의사인 정종필과 결혼하면서 <사과나무치과>를 폐업하고 남편과 함께 강남 서초구 교대역 인근에 신데렐라 성형외과∙치과를 개업했다.
2010년께 법인을 분리해 김유선은 신데렐라치과의원의 대표원장, 정종필은 신데렐라성형외과의 대표원장을 맡고 있으며 홈페이지도 따로 운영하나 실제로는 한 병원이란 분석이다.
김유선∙정종필 부부는 서초구 반포동의 아크로리버파크, 여의도의 롯데캐슬엠파이어 등 고급 아파트들도 여러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서초구에 위치한 서초교회에 출석한다고 한다. 둘 사이에 2녀를 두고 있으며, 김유선은 큰딸이 재학중인 초등학교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서도 활동 중이다.
김유선의 어머니 고기점은 2004년 군산시 나운동에 관광호텔인 리츠프라자호텔을 설립해 회장직에 올랐으나 김유선과 둘째 딸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리츠플라자호텔은 58개의 객실에 40여명 직원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고객의 70%가 외국인이다. 현재 50개의 객실을 추가하는 증축을 추진 중이다.
고기점 회장은 2015년부터 군산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며 2009년 관광사업 활성화에 대한 기여가 인정돼 전북 관광 진흥 유공자 도지사 표창을, 2010년에는 모범납세자로 선정돼 광주 지방국세청장표창을 받았다.
김유선의 아버지 김하겸 씨는 부인과 같은 성균과대 동문으로 현재 군산 구시장로에서 소형 약국인 <신세계약국>을 운영 중이며 군산시 약사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9년 7월, SBS<그것이 알고 싶다>가 김성재 사망 사건을 다룰 것을 예고하자 김유선은 부모와 함께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서울남부지법 반정우 부장판사가 이를 인용하면서 결방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신상이 털리자 김유선은 신데렐라치과의원 홈페이지를 패쇄했다.
김유선은 전문업체를 고용해 포털 댓글 및 커뮤니티, 블로그에 올라온 관련 게시물을 모조리 삭제했으며 작성자들을 고소해 일부 블로그들은 패쇄됐다.
12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취재를 보강해 재편성했으나 이번에도 반정우 부장판사가 김유선 측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불발됐다.
고기점 회장은 ‘우리 딸이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우리 가족은 24년간 편파적인 보도로 큰 고통을 받았다.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제 딸은 본인이 없어져야 우리 가족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울부짖었고 심각한 자살 충동과 우울증으로 무너져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성재의 동생 김성욱은 1997년 이현도가 프로듀스한 노래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후 배우로 전향해 뮤지컬,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2005년 화재로 전신화상을 당해 은퇴했고 이 과정에서 큰 빚을 졌다. 이 무렵 병원에서 우연히 김유선을 목격했으나 너무 놀라 모른 척 했다고 한다.
오랜 방황 끝에 2009년 결혼했으나 2016년 아내가 폐암으로 사망했고 현재 바리스타로 일하며 살고 있다. 어머니 육영애 씨 역시 김성재를 잊지 못 해 김성욱과 갈등이 깊어졌고, 잇따른 사업 실패로 김성욱과 함께 어렵게 살고 있다.